
금융위원회가 종신보험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연금처럼 당겨쓸 수 있는
‘사망보험금 유동화방안’을 추진한다. 리치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기대여명이 증가해 노후 소득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국내 노인 빈곤율(66세 이상 중위소득 50%↓)은 39.2%(2023년 통계청)로 OECD 내 하위 수준이며 연금 등을 통한 노후 준비도 주요 선진국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금융당국이 보험을 통해 ‘노후가 안심되는 삶’을 지원할 수 있게 노후 지원 보험 5종 세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세 번째 과제로 사망보험금 유동화를 추진한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사후 소득인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다. 다수 고령층의 주요 자산은 주택과 종신보험으로 볼 수 있다. 주택은 주택연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유동화할 수 있지만, 종신보험은 생전에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이번 제도개선은 종신보험을 주택처럼 유동화해 주택연금과 더불어 더 많은 고령층에 안정적인 노후 소득 수단을 지원하려는 취지다.
또 기대여명 증가로 사망보험금보다는 생전에 간병비, 생활비 등으로 활용하려는 소비자들의 수요 변화를 반영할 수 있다. 사후 소득인 사망보험금을 생전 소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계약자에게는 ‘쓸 수 없어 잊힌 자산’인 종신보험의 활용도를 높인다.
유동화 가능 계약 대상·조건과 신청 자격
유동화가 가능한 보험계약은 금리 확정형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 담보다. 보험료 납입이 완료(계약기간 10년↑·납입기간 5년↑)됐으며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은 계약이다. 신청 시점에 보험 계약 대출이 없어야 한다.
연금 전환 특약이 없는 과거에 가입한 종신보험 계약에도 제도성 특약을 일괄 부가한다. 다만 보험금 유동화가 어려운 일부 종신보험(변액종신보험·금리연동형종신보험·단기납종신보험)과 제도 취지와 거리가 있는 초고액 사망 보험금은 일차 유동화 대상에서 제외한다.
일반적으로 과거(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에 가입한 금리확정형 종신보험은 보험 계약 대출이 없다면 대부분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유동화 조건은 종신보험 고유 특성 등을 고려해 전액(100%) 유동화가 아닌 부분 유동화(최대 90%) 방식으로 정기형(예 20년)으로 운영된다. 신청 자격은 별도 소득이나 재산 요건은 없다. 신청 시점에 만 65세 이상인 계약자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해당 조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즉시 유동화 가능한 계약은 약 33만9000건이다. 유동화 대상은 약 11조9000억 원(보험사 취합 통계)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만 65세 도달하는 계약자와 납입완료자가 점차 증가하므로 유동화 가능 계약 대상도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동화 방식(연금형·서비스형)
사망보험금 유동화 방안은 연금형과 서비스형 두 가지 유형으로 출시되며, 두 유형 간 결합도 가능하다. 연금형 상품은 본인의 사망보험금 일부를 유동화해 매월 연금방식으로 받는 방식이다. 유동화를 통해 ‘최소한 본인이 납입한 월 보험료를 웃도는 금액’(납입한 보험료의 100% 초과~200% 내외)을 매월 연금으로 받도록 구성할 예정이다.
매년 보험 계약의 이행을 위해 준비하는 책임준비금의 일정 부분을 자동 감액해 지급하므로, 사망보험금의 시간가치(현가화)는 반영되나 무(zero) 사업비로 추가 비용이 없다. 다만 매년 책임준비금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므로 본인이 보유한 보험 계약의 예정이율과 유동화 시점에 따라 수령 금액이 변동된다. 책임준비금을 많이 적립한 고연령일수록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40세에 사망보험금 1억 원 상품에 가입해 매월 15만1000원의 보험료를 20년 동안 총 3624만 원을 낸 소비자가 70% 유동화를 선택하면 65세부터 20년간 매월 18만 원(납입한 보험료의 121%)을 받는다. 3000만 원의 잔존 사망보험금도 받을 수 있다. 수령 기간과 수령 비율은 소비자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연금형 유동화방안을 기존 보험계약 대출과 비교했을 때 장점을 보면 사망보험금 유동화방안은 보험계약대출과 달리 증가하는 이자 비용과 상환의무가 없으며 사망보험금도 본인이 계획한 만큼 잔존시킬 수 있다. 다만 보험계약대출은 언제든 보험계약대출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며 원리금 상환 시 사망보험금을 유지할 수 있다.
기존 종신보험에 부가된 연금전환 특약은 일부 보험사에서만 최근 출시된 계약 위주로 특약이 부가돼 있지만,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전 보험사가 요건을 충족하는 전 종신보험에 사망보험금 유동화를 하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연금전환 특약이 부가된 계약은 종신형 선택이 가능하지만, 유동화 계약은 정기형만 가능하다.
서비스형은 연금형태(현금)가 아닌 현물과 서비스 형태로 지급하는 상품도 추진한다. 보험사는 서비스·현물로 소비자에게 지급 시 원가 이하로 별도 이익(중개 이익 등) 없이 제공해 국민의 편익을 높인다. 이를 통해 요양시설과 건강관리(헬스케어), 간병 서비스 등과 연계한 다양한 상품이 출시될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했다.
특히 서비스형 상품은 요양·간병·주거·건강관리 등의 서비스를 보험상품과 결합해 제공하는 ‘보험 서비스화’의 초기형태(prototype)로 향후 제도 개선의 시범사업(test bed)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보험산업이 ‘생애 전반의 종합 서비스 제공자’로 변모하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형 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금융당국은 혁신금융서비스 추진과 관련 제도개선 검토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 상품은 올해 4분기, 이르면 3분기 출시를 목표로 준비된 보험사, 보험상품부터 차례로 출시할 계획이다. 금융당국과 업계는 실무 회의체(TF)를 구성해 출시까지 소비자보호 방안 등 세부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확정할 예정이다. 보험수익자의 사전동의, 유동화 시 수령액과 사망보험금 차이에 대한 설명, 유동화 철회권 및 취소권 부여 등 가입 전-청약-가입 후 전 단계에서 충분한 소비자 보호장치를 마련한 후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사망보험금 유동화 방안은 소비자에게는 안정적 노후 지원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보험 서비스를 통해 보험사의 역할을 강화해 소비자와 보험사 모두에 상호도움(win-win) 될 수 있는 과제”라며 “특히 새로운 상품 구조가 도입되는 만큼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밀한 소비자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욱호 기자